요즘 간 곳을 다시 찾아가는 ‘N차 여행’이 유행이다.
‘N차 여행’은 같은 지역을 여러 번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여행자들은 익숙한 공간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발견하고 개인적 서사를 쌓아간다. 처음에는 잘 알려진 명소를 둘러보지만 여행을 거듭할수록 골목길과 축제,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 등 지역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고 나아가 여행지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정서적 안정과 회복을 중시하는 여행 트렌드, 체험을 중시하는 MZ세대 취향, 계절·축제의 정례화와 맞물리며 N차 여행은 단순 소비를 넘어 지역과 지속적 관계를 맺는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으로 부각되고 있다.
여행자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주목한 한국관광공사의 9월 ‘요즘여행’의 테마 는 바로 ‘N차 여행’이다. 관광공사가 추천한 N차 여행지는 △강화도 잠시섬 프로젝트 △전주 도서관 여행 △강원 고성 해변 여행 △깊이를 더하는 하동 차(茶) 체험 △통영 강구안 미각 여행 등 총 5개다.
강화도에서 느끼는 특별한 환대,
잠시섬 프로젝트
강화에 뿌리내린 청년들이 만든 협동조합 청풍이 주도하는 ‘잠시섬’은 이름 그대로 ‘잠시 멈춰 섬에서 쉰다’를 지향하는 체류형 프로그램이다. 청풍은 자신들의 활동을 ‘여행업’이 아닌 ‘환대업’이라고 정의한다. 환대란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계를 넘어, 함께 시간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청풍은 이런 철학을 토대로 강화유니버스를 꾸려가고 있다. 강화도를 찾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소비하거나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으로서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셈이다.
잠시섬 프로그램은 강화유니버스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원하는 기간에 맞춰 숙소를 예약함으로써 참여할 수 있다. 강화유니버스 라운지가 있는 ‘아삭아삭순무민박’을 비롯해 도미토리와 1~2인실을 강화 곳곳에서 운영 중이다. 모든 숙소는 1인 예약이 원칙이다. 지인과 동행 시에도 개별적으로 신청해야 한다. 현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도록 설계한 것이다.
휴식과 모험이 균형을 이루는 30여 개 프로그램이 상시 구성되며, 요일·기수별로 일부를 운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것은 ‘금풍양조장 마스터 클래스’다. 최근 SNS에서 주목받기도 한 금풍양조장은 100년 전통을 이어온 곳으로, 건물 전체가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참여자들은 이곳에서 빚는 막걸리를 직접 시음하며, 대를 이어 양조장을 꾸려 나가는 주인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막걸리의 맛과 향은 물론, 잘 어울리는 안주에 관해 토론하기도 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가장 어울리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 즐기는 요가 프로그램은 정말이지 힐링이다. 때로는 숲속에, 때로는 황금빛 노을이 펼쳐지는 해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과정을 강화도의 젊은 주민들이 진행자로 나선다는 사실이다. 현지인의 안내에 따라 강화의 매력을 발견하고, 함께 어울리며 친구가 된다.
강화도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갈 때쯤, 잠시섬 참가자들은 다시 강화유니버스 라운지로 하나둘 모여든다. 오후 9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회고’의 시간에 참여하기 위함이다. 회고란 그날의 경험을 각자 기록하고 공유하는 시간으로, 잠시섬 프로그램에서 매일 밤 빠짐없이 진행되는 소중한 약속이다. 이처럼 잠시섬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관계를 매개로 강화도를 다시 찾게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된다.
빨간 버스타고 아지트로 출발,
전주 도서관 여행
전주에는 전국 최초 ‘도서관 여행’ 코스가 있다. 전주 도서관 여행팀은 2022년부터 도서관 해설사 양성과 공간 스토리텔링, 복합문화시설 체험 코스, 야간 코스 개발 등 도서관을 관광자원으로 만들었다.
전주 도서관 여행에 포함된 14곳 거점 기관 가운데 단연 첫손으로 꼽히는 도서관은 연화정도서관이다. 14만 8천500㎡ 부지의 연꽃 바다 한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연화정(蓮花亭)은 ‘정자’란 전통적 쉼에 현대적 가치를 더했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도내 유일의 시(詩) 특화 도서관이다. 미닫이문을 열면 통창 너머로 청량한 숲 풍경이 와락 안긴다. 1층은 시를 수확하는 공간이다. 세계 각국의 시집이 비치되어 있고, 사랑과 이별, 인생, 그리움과 기다림 등 주제별 시집에 불쑥 마음을 뺏긴다.
지난 6월 25일 전주 도서관 여행의 신흥 강자가 출현했다. 총 길이 101m, 호수를 품은 국내 최장 곡선형 도서관인 아중호수도서관이 개관한 것이다. 책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 특화 도서관’으로 일평균 1500명이 방문하면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곡선의 부드러움을 강조한 유선형 구조 덕분에 도서관 내부는 호수를 따라 걷는 듯한 느낌이다. 아중호수도서관은 호수를 바라보며 LP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다. 약 500장 중 나만의 취향이 담긴 LP를 찾아 턴테이블에 앉으면 된다. 고가의 음향 시스템이 탑재된 프로그램실에서는 소규모 공연이나 인문학 강연, 음악 영상 감상 프로그램 등이 정기적으로 운영된다.
헌책방이 즐비하던 거리에 자리한 동문헌책도서관은 헌책의 가치를 공유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헌책 도서관’이다. 다가여행자도서관은 ‘여행자’라면 꼭 한 번 방문해 볼 만한 도서관이다. 도서관 1층에는 국내외 여러 여행지를 다룬 가이드북과 에세이가 꽂힌 책장, 지구본이 여행자를 반긴다. 서학동 예술마을은 완산구 서학동에 있는 예술인 마을로 크고 작은 공방 30여 개가 밀집된 곳이다. 서학 3길이 중심인데 공방,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카페, 화실, 서점 등 아늑하면서 편안한 예술 공간이 자리한다.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은 카페, 갤러리였던 공간을 도서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붉은 벽돌의 왼쪽 팽나무동은 도서관, 담쟁이동은 갤러리다.
2025년 전주 도서관 여행은 오는 11월 1일까지 매주 토요일 운영된다. 여행 프로그램은 참여자의 연령과 목적에 따라 하루코스와 반일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하루코스는 △완전오감 △완전책틈 △완전여백 코스, 반일코스는 △책풍경 △책그림 △책여행 △책예술 코스로 나뉜다.
파도 파도 새로운,
강원 고성 해변 여행
고성의 해변은 그 어느 하나, 같지 않다. 같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해변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고운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지는가 하면, 기암괴석이 신비한 비경을 완성하고, 아기자기한 포토존이 화보 같은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먼저 봉포해변과 천진해변을 살펴보자. 천진항과 봉포항 사이 유려하게 뻗은 해안선을 따라 두 해변이 나란히 자리한다. 두 개의 해변은 하나처럼 이어져 사실 구분이 크게 의미는 없다. 굳이 구분하자면 천진은 초승달 모양의 해변이 아늑한 분위기를, 봉포는 긴 해변을 따라 펜션과 카페가 늘어서 휴양지 분위기를 연출한다.
춥거나 더운 날 실내에서 편안하고 고요하게 ‘물멍’ 하고 싶을 때 자주 가는 해변은 따로 있다. 가진해변 인근의 작은 해변으로, 공식 명칭은 없다. 여행자들이 찾던 해변은 아닌데 이곳에 2개의 대형 카페, 스퀘어루트와 에이프레임이 차례로 문을 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바다의 세찬 기운이 필요할 때에는 북쪽으로 더 달려 거진항 인근 백섬해상전망대까지 간다. 최근 숨은 스노클링 포인트로 입소문 나면서 여름철에는 꽤나 북적거린다. 2020년 개장한 백섬해상전망대는 앞바다의 백섬과 해안도로를 연결하는 총 137m 길이의 해상 덱과 25m 높이의 전망대로 이뤄진다. 덱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왜 여기가 스노클링 명소로 인기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물빛이 비현실적이리만큼 영롱하고 투명하다.
삼포해변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풋풋한 수학여행 장면이 촬영된 현장이다. 파란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초록 소나무의 파스텔톤 색감 조합이 아름답다. 교암리해변에서 천학정 너머에 있는 이름 없는 해변에는 워케이션 최적지 맹그로브 고성이 있다. 한적한 해변 앞에 자리한 맹그로브 고성은 오래된 펜션을 리모델링한 4층짜리 건물로 1층에 워크 라운지, 2~4층에 객실이 위치하는데, 일하는 공간부터 자고 쉬는 공간까지 모두 오션 뷰를 제공한다. 워크 라운지는 투숙객 경우 24시간 무료로, 일반 방문객은 일일 이용권을 구매해 입장할 수 있다.
차와 함께 다정해지는 시간
깊이를 더하는 하동 차(茶) 체험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는 천혜의 자연으로 충분히 빛나는 하동의 명성을 더욱 지금과 같이 값지게 높여준 세계적 유산이 있으니, 무려 12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차(茶)’다. 하동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로 유명했다. 녹차 재배면적이 전국 대비 23%를 차지할 만큼 하동에서 녹차가 차지하는 지분은 상당하다. 특히 화개면은 2006년 3월 8일 재정경제부로부터 ‘하동야생차산업특구’로 지정돼 하동의 지역적 가치를 올리고 있다.
하동에 오면 시선을 두는 곳마다 야생차밭이 보였고, 자연스럽게 차에도 관심을 두게 됐는데 그 중심에는 하동 곳곳에 자리한 수십 년 역사의 ‘다원(다실)’이 있었다. 하동의 다원 대부분은 주인이 직접 차 농사를 짓고, 차를 만들며, 차와 관련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화개면 부춘리에 자리한 ‘따신골녹차정원’은 하근수 농부가 운영한다. 1만여 평 규모의 산을 야생 차밭으로 가꾼 다원으로, 차나무는 물론 소나무와 진달래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름 그대로 정원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화개면 운수리에 자리한 ‘티카페하동’은 하동군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다도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하동티소믈리에 클래스, 하동의 차에 대한 이해와 흥미의 깊이를 더해주는 하동에피소드 티 클래스, 차와 함께 명상하는 차와 명상, 차와 함께 야외에서 녹차 족욕을 즐기는 녹차족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러 사람이 단체로 함께 참여하는 과정이 아닌 일대일 내지 최대 4인 내외 소규모로 맞춤형 차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면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다원을 방문하자. 그중 화개면 정금리에 자리한 ‘유로제다’는 백철호·엄옥주 부부가 1994년 화개에 이주해 2000년에 설립한 다원이다. 평균 3~4개 종류의 차를 맛보는 동시에 다도를 배울 수 있는 것도 다원에서 누릴 수 있는 특혜다.
통영 강구안에서 즐기는 황홀한 미각 여행
강구안 주변은 먹을거리가 넘친다. 그 유명한 충무김밥과 밀면, 시락국, 우짜면은 저렴한 가격에 반비례해 맛과 양만큼은 넉넉하다. 통영중앙전통시장 안에 있는 정화순대. 순대와 잡채, 김밥과 쫄면 등 한국인의 DNA가 흐르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강구안 주변은 군것질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그중 우리 부부 입맛엔 통영중앙전통시장 바로 옆에서 영업하는 통제영꽈배기가 최고다. ‘강구(江口)’는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작은 항구를 말한다. 이름처럼 강구안은 바다를 기준으로 통영 쪽으로 움품 들어간 지형이다. 강구안 뒤로 버티고 있는 동피랑과 서피랑 언덕 사이는 먼 바다까지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조선시대 중앙 정부는 이곳에 세병관을 짓고 충청과 전라, 경상의 바다를 지키는 임무를 띤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다. 통제영꽈배기에서 세병관까지 가깝다. 세병관 마루 위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 볼 수 있는데, 마루 중앙 뒤쪽엔 한단 높여 임금을 향해 예를 올리던 공간이 있다. 세병관 바로 곁에 있는 태평성당은 여행 중 잠시 들러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일제강점기 후 적산가옥과 일본 사원에 들어서 있던 성당을 1969년 새로 지었다.
저녁은 다찌집을 추천한다. 남쪽 바다가 선선히 내어준 싱싱한 해산물의 총합을 한상 가득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다찌’의 뜻에 대해선 몇 개의 설이 부딪힌다. 일본식 선술집 ‘다찌노미’에서 왔다는 해석과 ‘다 있지!’라는 조금 익살스런 주장이 가장 대표적인 설이다. 다찌집의 가격은 대개 2인 기준 8만 원 안팎이다. 제철 해산물과 기본 안주, 술이 함께 나온다. 음식 수를 세어보니 20여 개 이상이다.
정리=홍지연 여행+ 기자
자료 및 사진=한국관광공사